밀레니얼의 일, 나, 동료, 사회
어른의 우정은 신기하고 다양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일을 하다보니 회사 안이든 밖이든 ‘동료’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신기하게도 동료와 친구라는 말이 어느 스펙트럼에서 겹쳐 있다는 걸 점점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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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친구들을 사귀는 방식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프로젝트성 일을 하면서 가장 친한 친구들을 사귀게 됐고, 시간이 지나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회사에서 친구들을 만나게 됐다. 그리고 친구..라고 부르기엔 좀 낯간지럽지만 아주 가깝게 일하면서 관계를 쌓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함께 일을 하면 그 사람의 본질을 보게 된다고 생각한다. 계획이나 기대를 저버리는 상황, 갑자기 해결해야 하는 문제, 협력해야 하는 일과 온전히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일 등 수많은 상황에 처한 나와 타인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더 가까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긴 시간 동안, 아주 많은 노력을 들여 하는 일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큼 가까운 사이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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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에 대한 이야기가 몇 년 전부터 너무 많아서 사실 좀 피로하다. 일을 잘 하는 방법, 일의 의미, 일터 바깥에서 동료 만나기 등. 밀레니얼 세대는 일에 대해서 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만드는 걸까?
아무래도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는 개념을 어릴 때부터 가장 많이 접한 세대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이전 세대처럼 단순히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일을 하기 보다는 ‘나’,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일이 자리잡았다. 커리어적 의미, 사회정치적 의미를 찾기도 하고,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데서 성취감, 자율성을 느끼기도 한다.
일하는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주 5일, 최소 8시간 일을 하고 일하기 위해 통근하는 시간 등 까지 합치면 굉장히 많은 시간을 일을 위해 쓰고 있다. 그만큼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무언가에서 영향을 받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다들 이렇게 열심히, 길게 일하고 또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일에 대해 이야기 하나보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 한동안 이런 이야기들에 염증을 느껴 일에 대한 콘텐츠에 거리를 뒀다. 그러다 간만에 이 글을 읽었다.
먼저, 일을 ‘자기 자신과의 관계 맺음’이란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나를 잘 키우기 위한 수단으로서 일을 쓴다고 생각하는 관점입니다. ‘나는 이런 일과 환경에선 이 정도로 플레이할 수 있구나’, 스스로를 관찰하면서 알아차리고 ‘나는 이럴 때 몰입할 수 있고 성장한다고 느끼는구나’ 경험하기 위한 도구로서요.
그래서 솔직히 내겐 일이 중요하다고 받아들이는 게 우리 세대에겐 차라리 더 맞는 것 같다. ‘일과 나를 분리한다’라거나 ‘일에서 거리둔다’는 개념을 열심히 받아들이려고 해봤지만 도저히 잘 되지 않는다. 자신을 분열적으로 만드는 방식의 대응이 과연 맞는 방법인지 모르겠기도 하다. 하루의 1/3 이상 시간을 보내며 일을 통해 성장하고, 일터에서 관계를 맺고, 가장 치열한 대화를 나누는데 이런 자아와 ‘진짜’ 나를 분리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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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통해 내놓는 결과물이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생각해요. … ‘내가 만든 사회에서 내가 살게 된다’라는 문장이 저에겐 두려움과 용기의 원천이었어요. … 내가 내버려둔 사회에서 내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치는구나. 두려웠고, 바꾸면 바뀐다는 말이 용기가 되었어요. 때로 현실에서 좋은 장면을 발견할 때면 그 장면이 반복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나도 종종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과연 내가 가장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는 이 시간이 다른 사람에게,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 나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걸까.
내 안에서 일을 대하는 기준에는 언제나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이 있다. 좀 더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었을 때는 일을 통해 내가 만들고 싶은 ‘엔드 픽처’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무언가였으면 좋겠다. 더 빠른 배달 음식, 더 손쉬운 결제, 더 혁신적인 물건 또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일 수 있다. 그치만.. 그보다 조금 더 누군가의 삶을 더 낫게 하는 것, 좀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그런 일을 하면서 살아야 행복할 것 같다
어떤 장면을 보고 싶은 강한 열망. H는 ‘엔드 픽처’(end picture)라는 말로 이걸 일컫더라고요. “썸머가 보고 싶은 최종적인 그림이 뭐예요?” 이 일의 끝에 있을 구체적인 한 장면을 상상해보라는 질문이었어요. 그 순간을 떠올리면서 거기서부터 거꾸로 현재로 오는 거예요. 그 장면이 현실이 되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꾸 묻는 겁니다. 이런 구체적인 상상은 힘이 세서, 이야기가 되고 나 자신을 움직이고 다른 사람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어떤 관점으로 일을 바라보시나요. ... 때로 우리는 일의 도구처럼 살지만, 사실 일이 우리의 도구입니다. 자기 자신을 잘 키우고 싶어서,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어서, 혹은 세상에서 보고 싶은 장면이 있어서 우리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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