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화 상대와 의견이 다르면 상대의 의도와 동기를 실제보다 나쁘리라고 짐작하는 경향이 있다. ‘보수주의자는 인종차별주의자다’, ‘진보주의자는 애국심이 전혀 없다’, ‘공화당 지지자는 가난한 사람들에 신경 쓰지 않는다’ … 등이 그러한 짐작의 예다. … 대개는 잘못된 짐작이다.
상대방이 품은 의도와 동기는 내 짐작보다 좋을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미국 공화당 지지자의 대부분이 가난한 사람들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그보다는 부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낙수 효과’로 인해 고용 창출 등 기회가 늘어난다는 생각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 상대방의 의도를 꼭 추측해야겠다면, 하나만 하자. 상대방의 의도는 내 생각보다 더 좋으리라는 추측이다. … 대화의 초점을 ‘의도’가 아닌 ‘추론’으로 옮겨간다. (p.45)
작년에 산 <어른의 문답법>이라는 책을 아직도 읽고 있다. 어떻게 하면 나와 견해가 다른 사람과도 잘 대화할 수 있을지 한참 고민이 깊을 때 발견해서 사봤다. 이 책은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어떻게 생산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다룬다. 그치만.. 읽다보면 자주 답답하다. ‘내가 왜 지구 평평론, 인종차별주의자, 낙태가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 이 정도의 노력을 해야 하나?’라는 답답함이 솟구친다. (일단 대화 주제만 봐도 화가 난다..) 그래서 자주 읽다 덮었다.
책은 초급, 중급, 고급 대화법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앞에서는 이성과 추론에 기반한 대화의 기술을 다룬다면 고급에는 오히려 감정을 다루는 내용이 나온다. 역시 나 같은 사람이 많은가보다.
내가 화가 나거나 대화가 힘들어지는 시점은 대체로 비슷한데,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주장이나 인신공격을 펼칠 때 그리고 상대가 언성을 높이거나 화를 낼 때인 것 같다.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주장을 접하면 아주 자연스럽게 이성적인 사고가 중단되고 감정이 올라온다. 나는 (중립적인 의미의) 도덕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이다. 도덕적 사고와 사회적 사고가 이성적 사고를 압도하는 경우도 꽤 많다. 어떤 주제에 대한 견해를 구축할 때 ‘도덕적, 사회적으로 옳은지’가 소위 내 ‘버튼’인 것이다. 또, 상대가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올바름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효과적인 대화법을 연구한 여러 문헌에 따르면 ‘메시지 전달’은 통하지 않는다. … 대화란 주고받는 것인데, 메시지는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정보다. 메신저는 … 상대방이 자신의 메시지를 귀 기울여 듣고 결국 생각을 바꾸리라 착각한다.
정치적, 도덕적으로 견해가 다른 상대방에게만 통하지 않는 게 아니다. … 우리는 남이 전하는 메시지는 거부하는 경향이 있고, 스스로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견해는 잘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웃기게도 이 책 역시도 어쩌면 ‘메시지 전달’에 가까워서 거부감을 잘 참으며 읽어야 했다. 왜 거부감이 들었을까? 이 책을 살 때 이미 올바른 ‘나’와 그렇지 않은 ‘상대’가 나뉘어 있고, 올바르지 않은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던 건 내가 인식을 구축하는 방식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책에서는 사람이 어떠한 믿음이 참이라는 인식을 구축하는 요인을 아래 여섯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개인적 경험과 느낌: 마음속으로 참이라고 느낀다.
문화: 주변 사람이 모두 그리 믿으므로 참이다.
정의: 정의상 참이거나 좋거나 나쁜 경우. 가령 브로콜리를 과식하는 행동은, 뭐든 과식하면 나쁘므로 정의상 나쁘다.
종교: 설교나 경전을 통해 배웠으므로 참이다.
이성: 이성적으로 추론할 수 있으므로 참이다.
근거: 충분한 근거가 있으므로 참이다.
이 책은 250페이지 내내 대화의 기술을 가르친다. 다만 내 믿음, 의견에 대한 근거를 확보하는 것보다 오히려 상대가 가진 믿음, 의견의 구축 과정에 관심을 가지는데 도움이 되는 기술이 주요하다. 대화의 본질은 공동의 작업이고 협업이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의 대화를 이기는 것도, 메시지 전달도 아닌 협업으로 해나가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상대의 생각 그 자체가 아니라 추론에 관심을 두려면 정말로 그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에 늘 공동의 목표가 있거나 실제로 상대를 좋아하고 이해하고 싶어서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럴 때도 어떻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 혹은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그래도 일단 이 책의 메시지를 좀 더 수용해봐야겠다. 나이가 들수록 나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불쾌하거나, 메시지 전달처럼 느껴지거나, 공격당하는 것 같거나, 괴로움이 커질 때가 잦다. 이런 마음의 매커니즘을 바꾸면서 계속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다. 이 마음을 우선순위에 먼저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