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 년 간 여러 번의 초심자 시절을 겪었다. 어쩌다보니 선택한 일에서 익숙해질만 할 때 쯤 계속 다른 일로 넘어가는 일이 연속적으로 생겼다. 좀 지루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그 과정을 먼저 이야기 해보고 싶다.
스무 살엔 세상에 대한 나의 모든 궁금증을 풀어줄 것 같은 문화인류학에 푹 빠져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문화인류학의 참여 관찰 기법으로 문제를 발견하기 시작하는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방법론을 알게 됐다. 문화인류학은 문제를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이야기 해주는 데 탁월했지만, 그것만으론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 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였다. 내가 발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누군가를 움직일 수 있거나 스스로 움직여야 했다. 당시에 디자인 씽킹 방법론은 거기에 대한 답을 줬다. 협업이 필수인 방법론이라 동료들도 많이 생겼다. 그렇게 온전히 디자인 씽킹에만 일년 반 정도 빠져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황당하지만, 그때는 “드디어” 정답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디자인 씽킹에 관해 거의 모든 걸 찾아보며 공부했고, 프로젝트도 여러 차례 한 뒤 어느 순간 다시 한계를 느꼈다. 하면 할 수록 “방법론”이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깊이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 다시 다음 주제 혹은 분야로 넘어가야 할 때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졸업 직후 잠시동안 일했던 회사에서 처음으로 개발자를 가까이서 보게 됐다. 취미로 뉴욕타임즈나 FiveThirtyEight의 비주얼 스토리텔링, 데이터 시각화를 찾아 보던 시기였다. 글을 쓰거나 프로젝트를 하는 것보다 문제에 대해 깊게 리서치한 뒤 명확한 메시지를 인터렉티브하게 풀어내는 게 멋져보였다. 직접 내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일을 해볼 수 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처음 했다. 그렇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웹 개발을 배웠다.
공부하고 일하며 3-4년 정도 웹 개발자로 지냈다. 개발자로 지낼 때는 어떤 답을 찾았다기 보다는 그저 내가 언젠가 전달하게 될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하는 도구이자, 늘 갈증을 가지고 있었던 문제 해결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테크니컬 라이팅에 대해 알게 된다. 나는 기술에 대해 배우는 것과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데 이런 분야가 있구나! 흥미가 생겼다. 은연 중에 개발자 다음 커리어는 테크니컬 라이터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실제로 이렇게 갑자기 바꾸게 될 줄은 몰랐다.
이렇게 여러 번 초심자가 되는 경험을 하면서 얻은 것들이 있다. 여러 번 초심자였기 때문에 새로운 직군으로 업무를 바꾸는 동료들이나 친구들의 마음을, 혹은 아직 무언가에 서투른 사람들의 마음을 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인 테크니컬 라이팅에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기술에 대해서 어렵게 느끼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에 그런 장벽을 낮추는 기술 컨텐츠를 생산하며 내 앎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전 경험은 늘 다음 스텝의 발판이 된다. 개발자였을 때의 경험이 개발자를 위한 글을 쓰는 지금의 일에 도움을 준다. 디자인 씽킹을 할 때도 문화인류학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 과거의 경험이 현재 초심자인 나를 도와줄 때가 많다.
언제나 새로운 일에 뛰어들기 전에는 설레고 기대가 된다. 다만 실제로 되고 보면.. 막상 그렇지가 않았다. 나는 일을 시작한 이래로 언제나 뉴비, 주니어였기 때문에 자주 위축되고 자기 의심에도 시달린다. 내가 충분히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불안, 인내심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 속에서 뉴비 시절을 또 지나보내고 있다. 답은 아직 모르지만, 최고의 팟캐스트 시리즈 Serial 을 만든 아이라 글래스도 이런 시간이 있었음을 다른 책에서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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