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집과 방을 거쳤지만, 처음으로 내 공간에 대해 인지했던 선명한 기억이 있다. 14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가야 있는 코펜하겐의 3층 짜리 단독 주택의 꼭대기 층의 방 하나. 도착한 날, 걸어 다니면 삐걱대는 마루를 걸레질하고 가져온 몇 안 되는 짐을 풀고 텅 빈 방에 앉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온전한 내 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구나! 온전한 내 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어 그 필요를 언어화조차 하지 못했던 청년기의 시작이 바로 부모님이 준 방을, 집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다는 걸 이제야 이해한다.
그 하얗고 넓은 방(유럽의 방들은 오래돼서 한국의 원룸과 달리 좀 넓은 편이다)에 가득한 공백을 보면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이 공간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그때 이해했다. 완전한 백지상태가 당황스러우면서도 올바른 곳에 왔다고 느꼈다. 방을 꾸미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해외 드라마를 보면 외국 청소년들이 늘 자기 방을 개성 있게 꾸며두는 것을 보면서(캐비넷마저도..) 왜 저기에 집착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내 것이 아닌 공간에 날 표현하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부모님 집의 ‘방 1’에 사는 것은 부모님의 공간 속에 속해있는 것일 뿐이었다. 가구든 식기든 내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내가 고른 게 아니었고, 내가 맘대로 추가할 수도 없었다.
아무튼 그 방에서 많은 생각을 하고, 일기를 쓰고, 수많은 영화를 보고, 친구들을 만났다. 모든 게 새로웠고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졌다. 동시에 외로움이나 단절감이 강렬하게 밀려와서 혼자 있을 땐 일기를 끊임없이 썼다. 원하던 삶의 속도를 만나 꼭 맞는 옷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온전한 내 공간을 가지고 있는 완전한 이방인의 생활에는 모든 게 뒤엉켜있었다. 그때 오롯이 내 방이 생겼던 것이 아주 멋진 타이밍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방을 거친 후에 나는 좀 달라졌다. 늘 내가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공간을 당연하게 원하며 찾아나갔고, 그 공간에서 나다운 것들을 채워나갔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랬다. 그 이후에는 한 번도 텅 빈 방에서 황망하게 내 내면에 아무것도 없는 듯한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솔닛이 쓴 것처럼 “많은 것을 난생처음으로 발견할 수 있고, 인생의 대부분을 아직 겪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누군가가 되어가는 굉장한 과업” 중에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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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나 지금 내 방에는 무엇이 있나 살펴본다. 읽었거나 읽지 않은 책들, 친구들의 편지, 귀여운 그림, 여행의 추억을 담은 물건, 새로운 취미의 흔적. 지금도 종종 이십 대 초반에 처음 코펜하겐에 떨어졌을 때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많지만(30대인 나는 이것보단 더 어른 일 줄 알았는데..), 여러 방을 거친 덕분에 나를 둘러싼 환경을 구축하는 법을 조금 더 잘 알고 있다. 솔닛의 말대로 성인기가 늘 불규칙한 변화를 담보하고 있다면 다행이다. 앞으로도 자기만의 방, 나만의 공간에서 계속 변하고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