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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고 하지만, 주중에는 어서 빨리 금요일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여느 직장인과 다름 없는 내가 있다. 하지만 내심 중간중간 금요일만 기다리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다른 시간’을 기다리며 산다니. 그래. 다시 정신차리자, 다짐하고 주중의 시간에 몰두해 본다. 어쨌든 일은 내 삶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 때로 만족감이나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잖아! 무엇보다 일을 안하면 생활은 어떡하려고! 어른답게 굴자.
그러기를 며칠, 몇 주, 몇 달.. 갑자기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가치에 대해 물음표가 생긴다. 얼마 간 환멸나 하다가 다시 또 ‘업무인’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영혼없이 일을 하는 분열적인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기에 다시 또 얼마 간 일과 혼연일체가 된다. 혼연일체 시기를 마치고 나면 다시 소진된 자신을 돌보기 위해 힘을 빼려고 노력한다.
이 모든 모순적인 패턴을 반복하면서 도대체 일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많은 지식 노동자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어느 정도는 자신이 없다고 느낀다.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일의 가치와 자기의 가치는 무엇인지, 그에 대해 어떻게 보상받고 있는지, 누구로부터 보상받는지 등이 확실하지 않다. 우리는 이런 혼란에 상당히 혼란스럽게 반응한다. 어떤 이들은 이 모든 걸 뒤죽박죽으로 만든 착취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에 깊은 환멸을 느끼거나, 이에 반발해서 과격해진다. 또 다른 이들은 업무에 투신해서 일을 자기 가치를 규정하는 요소로 삼는다. 개인적 가치의 실존적 위기에 대응하여 이들은 생산성이라는 쳇바퀴에 올라타 끝없는 업무를 해나가면서 결국 우연히 목적과 품위와 안정성을 발견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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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에 대한 고민을 꽤 오래 했지만 ‘일과 나의 관계’에 대해 아직 뚜렷한 답은 내지 못했다. ‘어떻게 더 지속가능하게 일할 것인가?’를 다루는 책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를 중반까지 보면서도 역시 답은 없다는 거군, 하며 김이 좀 빠졌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 ‘노동자 들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장에서 최근 내가 어렴풋이 내린 결론과 비슷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 새로운 일을 시도하지 않거나, 예전에 좋아했던 일을 하는 방법을 생각하려 하지 않는 게 훨씬 더 쉬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당신이 고갈된 상태라는 뜻이다. 업무가 깨어 있는 시간을 전부 집어삼킬 때, 당신을 정말로 풍요롭게 해줄 일을 해보려는 의지도 함께 집어삼킨다. 사실 우리는 이런 활동들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 자신을 노동자로서 최적화하거나 일하기에 적당한 신체를 갖는 방법을 찾으려는 것 외에는 자기 자신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동안 인내심을 갖자. … 인내심을 갖고 자기 자신에게 관대해지자. 이건 자기 관리가 아니다. 회복과 재충전이다.
다음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져보자. 일이 더 이상 인생의 중심축이 아니라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 누구를 지원하고 싶고,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고 싶고, 무엇을 위해 싸우고 싶은가?
나는 꽤 워커홀릭이고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데, 그것은 일이 자주 내게 필요한 것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생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기회, 사람들을 통한 배움, 나의 시야를 넓혀주는 순간 같은 것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본질적인 가치를 일이 아니라 다른 것에서 채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과 나의 관계’라는 주제를 고민하는 것이 오히려 ‘일’의 자리를 크게 만들어 오다가, 마침내 그 주제 자체를 뒤집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책이 결국 개인이 자신을 지키는 게 구조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결론을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꽤 와 닿았다.
그래서 온전히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을 아주 천천히, 하나씩 만들고 있다. 지난 해 뉴스레터를 시작했고 올해는 친구들과의 티타임을 도전해 본다. 나는 읽고 쓰면서 시야가 넓어지는 순간을 사랑하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하며, 또 그들로부터 배우고 싶어한다. 나는 두 번째 인용에 있는 질문을 모두가 던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내가 일에 너무 빠져 있는데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면, 그리고 우리 대부분이 그렇듯 노동 시간이 줄어야 함을 알지만 내심 일이 주는 도파민도 좋다면, 사실 내가 일이 주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한 번 더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의미’와 ‘존엄성’을 갈망하는 것이지 일을 갈망하는 게 아닐 수 있다. 질문에 답을 하다보면 천천히 나만의 힌트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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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여느 때와 같이 일에 허덕이던 나와 친구들의 얘기를 듣던 김현미 선생님이 ‘자기 돌봄은 원래 급진적인 것’이라고 하시며 더 근본적인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내야 한다고 하셨다. 말 자체의 부드러운 느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 돌봄’을 마치 바쁜 삶 속에서 가끔 힐링하는 활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지만, 진정한 자기 돌봄이란 그런 게 아니라는 얘기였다. 자기 돌봄은 생계의 압박이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구조, 또 개인이 일과 오랫동안 맺어온 관계나 삶의 방식에서 빠져나오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급진적인 삶의 선택이다. 당연하지만 갑자기 일을 그만 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정말 즐거워 하는 순간을 더 많이 만들고, ‘일’을 걷어냈을 때 본질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질문하고 행동에 옮겨보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친구들과 큰 목적 없는 만남을 제안하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