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되고 나니 친구들과의 우정 관계에 새로운 국면이 생긴다. 각자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문제, 혹은 본 적 없는 규모의 인생 문제가 종종 수면 위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하는 친구의 문제에 개입해야 하는 게 맞는지, 얼마나 개입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진다. 10대, 20대 때부터 알고 지내며 안정화 된 측면이 있는은 30대의 우정은 그동안에는 몰랐던 무거운 문제들을 만나며 당황하고 흔들린다.
어릴 때는 개입의 스펙트럼이 다양하지 않았다. 고민에 완전히 감정 이입하고 친구와 감정적으로 한 몸이 되거나(좋지 않음), 가끔 해결사를 자처하거나(좋지 않음),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에는 멀리 거리두기 하면서 친구를 판단하고 조언했다(좋지 않음). 쉽게 개입하고 평가하고 끼어들었다. 널 ‘우정 하는’(80년대 말 90년대 초에 태어난 여성들이 학생 시절에 서로에게 쓰던 어휘) 만큼 당연히 개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이야기 한다는 건, 개입을 허락하는 것과 같았다. 개입의 자격은 언제나 차고 넘쳤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에게 말하지 못했던 문제들, 혹은 각자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면서 악화되거나 강화되어 온(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더 복잡한 이슈가 생기고 고민의 축도 다양해 지면서 쉽게 판단이 안된다. 나는 이제 친구가 도와줄 수 없는 범위의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며칠 전 친구들에게 이런 고민을 토로했다. 점점 우정이 너무 어려워 진다(?)고. 대화를 하다보니 쉽게 개입하던 나는 점점 조심스러워 지고, 개입을 잘 안 하던 친구는 더 많이 오지랖을 부리는 식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치만 공통으로 한 이야기는 ‘결국 이제 자신의 문제는 대부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 여전히 친구들에게 명료한 판단과 예리한 직관을 많이 의탁하며 사는 나로서는 조금은 차거운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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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화의 말미에 친구들이 입을 모아 <브러쉬 업 라이프>라는 일드를 추천해 줬다. 내가 일드를 본 지가 언제더라… 생각하자마자 친구가 일드의 느끼함이 없고 여성들의 우정을 다룬 내용이라고 해서 찾아봤다. 다행히 구독중인 OTT에도 있길래 바로 틀어봤다. SF나 OO물 같은 비현실적인 콘텐츠 잘 소비하지 않아서 내가 본 첫 ‘회귀물’이었다. 첫 3-4화쯤까지는 그냥 잔잔하게 재밌는데, 여기에 우정 이야기가 중심이 맞나? 싶었다. 물론 주인공과 친구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즐거움을 나누면서 살지만.. 그게 다이고 주인공이 여러 번 다시 태어나는 거라면 조금 시시한데 싶었다.
인생을 다시 사는 동안 주인공은 다시 초중고를 지나는데, 그녀는 대체로 비슷하고 가끔 새로운 경험을 만든다. 친구의 불행을 막는다거나,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한다거나, 싫어하는 선생님한테 다시 더 똑똑하게 말대꾸를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보는 입장에서도 곧 어릴 때 친구나 선생님 등 추억을 되짚게 된다. 아주 사소하지만 기억에 남아있는 순간들이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그때 더 제대로 말대꾸할 걸! 같은 것들) 하지만 이런 사소한 변화로 인생에 큰 변화가 생기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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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인생에서 지루한 공무원으로 살아가다가 사고로 죽은 주인공은 2회차 인생에서 약사가 된다. 약사가 된 그녀를 보며 내심 ‘그래, 다시 살게 된다면 좀 더 성공하거나 좀 더 쉬운 삶을 살아야지’하고 생각했다. 다시 어이없는 사고로 죽는 3회차 인생에서는 드라마 PD가 되어 자기 이야기를 펼치는데 그때도 내심 ‘그래, 다시 살게 된다면 더 자아를 펼칠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지’ 생각했다. 가장 이입을 많이 했던 회차였다. 그녀의 인생에서는 친구들과 보내는 소소하고 즐거운 시간만 회차를 거듭하며 계속된다. 그리고 다시 4회차 인생이 시작된다. 그때부터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일단 친구들의 분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더 크게 성공하고 덕을 쌓기 위해 공부에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뭔가 크게 빠진 듯한 느낌이 든다. 이제부터 완전히 다른,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더 이상 스포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이건 100% 여성들의 우정 이야기다. 연애나 결혼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여자들의 생활과 우정 이야기로만 가득 찬 드라마는 처음 봐서 강추하고 싶다. (왓챠, wavve, tving, 애플 티비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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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고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내가 몇 회차를 다시 살든 내가 바꿀 수 있는 성취의 크기는 고만고만 할 것이고 그 크기의 차이가 내 행복을 결정하진 않을 거라는 것이다. 최근 내면에 큰 변화가 있었는데, 그 변화와도 맞닿아 있었다. 내 삶의 중심에서 성취와 인정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발견한 것, 그리고 그것을 꾸준히 제거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성취지향적이고 모든 경쟁에 본능적으로 호승심을 느끼는 내게 성취에 대한 갈망은 물질적인 것이기보다는 자주 실체가 없는 스스로의 충족감, 외부의 인정, 혹은 담보되지 않은 미래의 만족감이나 가상의 행복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은 매번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시간과 압박감에 짓눌린 시간이 인생에 너무 길었다.. 마치 몇 회차를 살면서 깨닫는 드라마 주인공처럼, 나도 이제는 반복되는 실수를 그만할 때가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은 아주 사소한 데서 잘 행복해하는 나를 위해 좀 더 즐거운 시간을 채우고 싶어진 요즘이다. 드라마에서 내심 주인공의 회차별 사회적 성취 정도를 무의식적으로 재는 내 모습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런 내 모습을 직시하면서.. 어쨌든 변화는 시작됐다.
다른 하나는 결국 다시, 친구들의 삶에 개입하고 더 많이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최근 소극적인 마음이 든 것은 사실이지만 역시 친구들과 엮여 있는 내 삶이 더 좋고 행복하다. 어려운 것은 개입 그 자체가 아니라 친구와 나를 그리고 관계를 지키면서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에 대해 섬세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실수도 하고 두렵거나 상처 입기도 하겠지만, 관계 속에서 또 스스로 회복 하면서 그 시간을 지나보고 싶다. 40대, 50대가 되면 또 다른 고민들이 생길 것이다. 그 고민도 기껍게 맞이하고 싶다.
일상에서 즐거운 순간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몇 회차의 삶이 반복되더라도 함께한 즐거운 순간들이 인생에 의미로 남는다는 것. <브러쉬 업 라이프>가 이 뻔한 이야기를 멋지게 보여주었다. 나의 인생도 조금 다르게 살짝 ‘브러쉬 업’ 해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