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얼굴은 아는데 책을 한 권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1993)》, 《우리는 사랑일까(1994)》, 《너를 사랑한다는 건(1995)》, … 뭐랄까 책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
알랭 드 보통 책이 유행하던 시기에 한참 고등학생이다가 대학에 들어가 사회과학이나 문학 책에 빠져서 그랬는지, 사랑이나 낭만을 다루는 책은 시시하게 느껴졌다. 누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대수인가? 연애나 사랑, 낭만은 유치한 나르시시스트들의 일 같기도 해 거리감이 있었다. (’지금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말이야.. 어?’)
뭐든 읽는 걸 좋아하지만 남의 사랑 이야기는 별로 읽어본 적이 없다. 읽는 건 둘째 치고 (한국인이 좋아한다는) 《어바웃 타임》, 《라라랜드》같은 로맨스 영화도 그저 당황스럽기 일쑤였던 거 같다.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누군가 누군가를 과하게 욕망하고, 그 욕망에 부응하거나 대립하며 벌어지는 일들이 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어릴 때 읽었던 인어공주도 생각난다. 거기에 묘사된 사랑이라는 게 너무 과하지 않은지. 심지어 아이들이 읽기에 말이다. 왜 목소리를 잃고 거품이 되어서 죽는 거지.. 어린 여자아이들이 읽기에 너무 유해하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사랑한다는 건 이런 것인가? 나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목소리를 잃거나 거품이 되기 싫고, 그냥 나로서 살아가고 싶은데.. 그래서인지 혹시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아닐까?하는 의문도 꽤 오래 가지고 있었던 거 같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과 연애에 대한 생각도 앎도 조금씩 바뀌었다. 오랜 시간 동안 단 한 명에게 경제적, 성적, 낭만적 파트너가 되어주십사 하는 근대적인 사랑의 형태는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한 편으로 기형적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낭만적 단위"에만 속해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고 온도도 다양하다는 것. 서로 욕망하고 욕망당하는 것은 사랑의 아주 일부라는 것.
이 인터뷰를 읽고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사랑과 연애에 대한 생각에 동의했다. 사랑과 연애는 우연이 아니라 노력이고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오랫동안 헌신해야 하는 교육적 측면이 있다는 것에 말이다.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말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와 친밀해지면 편안해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나 자신’을 타인에게 공개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때때로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정한 나 자신’의 모습이 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심연 속의 나.. 그것을 타인에게 보여준다는 것.. 생각만 해도 손에 땀이 난다. 그치만, 그래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때로 용기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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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은 강한 욕망이 있고, 그렇게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실제보다 더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내 마음을 마주할 때 종종 부끄럽고 겸연쩍다. 그래서 어릴 때는 내 인간성이나 의도가 비난, 오독될 때 견딜 수 없어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상대를 탓하기도 했다. 이제는 내가 언제나 올바른 사람이어야 한다는 방어막이 많이 사라졌다. 내 안에 볼품없는 마음이 작용할 때가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조금 더 자주 방어막을 내려놓는다.
재밌는 건 한 명과의 파트너쉽 형태가 아니라, 친밀감을 얻는 여러 관계들이 생길 수록 스스로를 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이다. 더 진실하고 풍부한 사람이 된다. 더 나은 나를 원하지 않게 된다. 사랑받기 위해 목소리를 잃거나 거품으로 변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도록. 왕자나 육지 사람들이 사랑해줄 수 있는 모습이 아니라 그저 나 자신으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나를 판단하지 않는 그 관계들 덕분에 더 이상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다는 욕망과 멀어지고 더 나 자신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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