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휴일을 맞이하자 해방감이 밀려온다. 아마 비슷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하루의 긴 시간을 일에 쓰면서도 충분히 행복하지 않고 자주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고민을 나누기도 조금 겸연쩍은 나이와 연차가 됐다. 의미를 찾기를 멈추고 그냥 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로 보이기도 한다. 그치만.. 여전히 일에 대한 고민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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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주 간은 일에서 보람과 의미를 찾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은 종종 찾아오는데, 이유는 다양하다. 도움이 되지 않는 상사의 비교나 평가, 조직의 방향성 부재로 인한 동기 부여 저하와 같은 외부적인 요인일 때도 있고, 내 일이 좁게는 조직 넓게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지와 같은 깊은 의문이 갑자기 치고 들어오거나 내 일이 나라는 사람의 본질과 연결점을 가지지 못할 때와 같이 내부적인 요인 때문일 때도 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어딘가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기가 점점 더 쉬운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내 가족을 먹여살리는 것, 그리고 내가 속한 조직의 매출이 높아지는 것에만 집중하기에는 세상의 너무 많은 문제를 접하기 때문이다. 특히 IT 업계에 있으면서 가장 첨단의 기술과 고연봉의 인력이 모여 만드는 서비스들이 내가 신경쓰는 문제들과 너무 동떨어졌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혁신.. 인재.. 기술.. 개발.. 같은 같은 단어에 거품이 많이 끼었다고 생각한다. 내 일도 그런 맥락 속에서 의미화의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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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생겨난 직종에 종사하는 상당수는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식사회는 온갖 종류의 업종과 몇 년 전만 해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틈새 일자리를 고안했다.
인사, 홍보, 마케팅, 영업, 경영 전략, 기업의 사회적 책임, 준법 감시, 정보 기술, 혁신, 연구 개발, 물류, 회계 관리, 조달, 직원 교육 담당, 보상, 품질 확인, 감사, 브랜딩, 교정, 공유 서비스, 프로젝트 관리, 이동성 사업 개발 등. 물론 이것이 끝이 아니다. 변화 경영, 효율 경영, 시장 성장, 교육, 다양성, 문화 지성, 업무 관리, 인성 분석, 고용과 구인 등에 대한 일련의 컨설팅도 여기에 포함된다. 공적 분야에도 관리, 환경 조사, 품질 확인, 인가 등의 일자리가 가득하다. 즉, 공적 부문에서든 사적 부문에서든 풍부한 지식노동자들을 융통할 많은 새로운 일자리를 조합해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할 일이 잔뜩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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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 중인 문화에서는 끊임없는 변화가 사실상 정상이 되어왔기에, 우리 모두는 결국 직업의 임시적 속성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오늘 하는 일이 내일은 쓸모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계속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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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과거의 일터에서 일을 하면서 느꼈던 어떤 공허함 같은 것들이 기억났다. 하루 몇 시간 동안 스스로에게 딱히 의미없는 일을 하면서 퇴근시간이 다가오길 기다리는 시간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날들에는 아무리 칼퇴를 해도 어딘가에 시달린 사람처럼 지쳐있다.
경제적으로 한 개인으로 기능하고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은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하지만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을 하는가? 최소한 나에게는 아닌 것 같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언가 가치를 만들거나 해결하는 활동, 그 활동이 어딘가에 도움이 된다는 감각, 소속감 등 다양한 요소들이 중요하다. 다만 지금은 너무 많은 물리적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를 일에 쓰기 때문에 이 모든 활동과 감정의 수요가 일터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거나, 소속감을 느끼는 조직에서 인정 받을 때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일이 잘 안 되거나 의미를 찾지 못 할 때 거의 존재론적 위기가 온다. 지금처럼 오래 일하면서 일에서 멀어지면서도 내가 어떤 걸 하는 사람이고 어떤 것에서 의미를 찾는 지 알 수 있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헤겔과 카를 마르크스는 노동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다. 일한다는 것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노동하지 않는 것은 인간성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꼭 임금노동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 노동에는 자신이 탈 보트를 만들거나 자신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일도 포함된다. 노동은 처리 활동이다. 사물을 만들고 처리하는 행위는 인간이 자신의 환경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방식이며, 한 인간이 세상에 들어가서 자기 자신이 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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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말하는 ‘가짜 노동’을 너무 하고 싶지 않아서 자주 괴로운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어릴 때 상상한 ‘일’이란 이런 게 아니었기 때문에.. 실제로 나에게 그리고 세상에 딱히 큰 의미가 없는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니까.. 당연히 하기 싫고 괴로운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일을 인생의 아주 중요한 심급으로 올리는 건 나 자신인 것 같다. 일 안에서 책임감, 성취감, 즐거움, 우정 등 다양한 것들을 총체적으로 얻고 생산하고 싶다. 물론 돈도 많이 벌면 좋다.
일에 대한 극한의 냉소와 광기, 어느 쪽에도 일과 함께 나를 성장시키고 세상에 더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다는 마음을 말하기가 어렵다. 대가를 받는 만큼 조직이 원하는 일을 해주기만 하면 돼. 조직의 목표에 완전히 너 자신을 얼라인 시켜야지. 냉소에도 광기에도 완전히 탑승하지 못한 채 나는 이런 마음을 부자연스럽게 느낀다. 여전히 갈증이 남는다. 그 갈증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또 다시 n회차의 에고 트립을 하며 찾는 도전이 어떤 답을 줄까? 잘 모르겠다. 모든 것이 안개처럼 뿌옇게 느껴져서 아무 결정을 못하고 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내 일 속에서 작은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실현하기 위해 한 주를 보내고 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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