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란 어떤 주제를 갖고 써야 하죠. 내 기억에 내 글은 유명한 남성 작가의 소설에 대한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 서평을 쓰면서, 앞으로 서평을 쓸 작정이라면 어떤 유령과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여자의 유령이었죠. 그 여자를 더 잘 알게 되었을 때, 유명한 시 제목을 따서 그녀를 ‘집 안의 천사’라고 불렀어요. 그 여자는 서평을 쓰고 있는 종이와 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곤 했어요. 얼마나 날 귀찮게 하고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고 날 괴롭혀대던지 결국 그 여자를 죽여버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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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행복한 세대인 젊은 여러분은 그 여자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 가능한 한 간단하게 설명하도록 할게요. 그 여자는 온정이 넘치고 매력도 넘칩니다. 이기심이라곤 전혀 없고 가정생활이라는 어려운 기술에 아주 능해요. 매일 자신을 희생했죠. … 한마디로 절대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바람은 지니지 않고 늘 다른 사람의 생각과 바람에 동감하도록 생겨먹은 거죠. …
당시에, 그러니까 빅토리아 시대 말기에는 어느 집에나 그런 천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첫 글자를 적자마자 그 여자가 나타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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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가 한 일은 몸을 돌려 그 여자의 목을 조른 거예요. 온 힘을 다해 목을 졸라 아예 죽여버렸죠. 내가 만약 이 일로 법정에 서게 된다면, 그건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녀가 날 죽였을 테니까요. 내 글의 정수를 뽑아버렸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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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깨닫게 된 바는 이러했거든요. 손에 펜을 들었을 때 여러분이 자신의 정신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인간관계와 도덕과 성과 관련된 진실이라고 여러분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표현할 수 없다면, 하다못해 소설의 서평 하나도 쓸 수가 없다는 사실이지요. … 당시 모든 여성 작가들에게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었죠. 집안의 천사를 죽이는 일이 여성 작가라는 직업의 한 부분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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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산문선 중 글을 쓰는 여성의 일을 다룬 것을 읽었다. 일부만 발췌하기 어려울 만큼 같이 읽고 싶은 내용이라 많은 양을 발췌했다. 이제 많은 여성들이 글을 쓰고 저자가 된다. 나 역시 울프의 시대와 완전히 똑같은 ‘집 안의 천사’를 만나진 않지만 여전히 글을 쓸 때 자기 의심이 자주 든다. 이 글이 의미가 있을까? 내가 내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의미를 가질까? 울프의 산문을 읽고 나니 의심을 좀 더 적극적으로 거두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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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이 지난 지금도 모든 여성의 ‘집 안의 천사’가 완전히 죽어버렸냐 하면 답하기가 어려워보인다. 다만 나는 사적 세계에서 자신을 옭아매는 목소리 말고도, 내가 나로서 공적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울프는 다른 산문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앞에는 직업 체계라는 공적 세계가 있는데, 여기에는 소유욕과 시기심과 호전성과 탐욕이 가득합니다. 하나는 하렘의 노예처럼 우리를 가두고, 다른 하나는 재산이라는 뽕나무, 그 신성한 나무 주변을 애벌레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뱅뱅 돌 것을 강요합니다. 두 종류의 악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죠. (<여자는 울어야 할 뿐(1938)>)
이제 울프의 시대보다는 조금은 더 나아져서 오로지 사적 세계와 공적 세계 두 가지 역할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탐욕과 호전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 같은 공적 세계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 지 여전히 자주 헷갈린다.
생계를 이어가는 동시에 자신으로서, 어떤 방식으로 시스템과 어울려 살아야 할 지 모르겠는 매일, 많은 순간들이 있다. 울프는 다시 거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답하라고 이야기 한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남성들만이 집 안에서 가질 수 있었던 자기만의 방을 얻어냈어요. 엄청난 노동과 노력이 드는 일이지만 어쨌든 집세도 낼 수 있게 되었지요. 일년에 500파운드의 돈을 벌게 된 거예요. 하지만 이러한 자유는 시작일 뿐입니다.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었지만 방 안은 아직 휑뎅그렁해요. 가구를 들여놓고 장식을 해야 하지요. 누군가와 함께 쓸 수도 있고요. 여러분은 그 방에 어떤 가구를 들여놓고 어떤 장식을 하려 하나요? 누구와 어떤 조건에서 함께 쓸 생각인가요? 이것이야말로 극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여러분은 이제 그러한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역사상 처음으로 여러분은 그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었어요. (1931)
이 글을 함께 읽은 사람들 각자의 질문과 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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