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새로운 능력과 더불어 일가친척이 아닌 집단 구성원을, 심지어는 집단 내 타인까지 강하게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났다.
•
지난 주 사과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수 년 전 자신이 내게 저지른 잘못을 사과하는 메일이었다. 용서를 구하기 위한 메일은 아니라고 했다. 친구들은 무시하라고 했다. 내 에너지가 아깝다는 이유였다. 이해가 갔다.
하지만 며칠 고민하다 답장을 썼다. 여전히 그가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을 정정하고,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과정을 특정 의도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조금이나마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변의 세상을 더 낫게 한다는 의미에서 썼다. 그래서 답장은 그 사람을 향한 호의나 용서의 대화가 아니라 그가 미친 영향에 대해서 함께 학습하는 과정이길 바랬다. 그가 자기 스스로 용서를 구하고 좋은 대화를 나눴다는 위안을 얻길 바라지 않기를 바랬다.
며칠 전 회사에서는 나에게 외모와 관련해 잘못된 발언을 한 동료가 있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나 동료들은 이런 일이 생기면 상대방의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냥 무시하고 더이상 그 사람을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거나 맘에 두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나는.. 그냥 그렇게 둘 수가 없었다. (어쩌면 모든 상황을 내 의도대로 끌고가야 하는 통제광(control freak)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어떠한 상황에서 특정 발언을 했던 것 기억이 나는지, 그 발언의 문제는 무엇인지, 앞으로 그런 말은 동료 간에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 사실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에는 많은 에너지가 든다.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 지 몰라 심적으로 불안해지거나 걱정하는 등 한 번 더 에너지를 써야한다. 하지만 대부분 이렇게 이야기를 걸었을 때 사과를 하고 고맙다고 한다. 이번에도 다행히 그랬다. 과거에 무방비하게 무례함을 마주해야 했던 나를 돌보고, 미래의 나와 다른 동료들을 무례함으로부터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두 상황은 나에게 비슷한 일이었다. 꽤나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던 한편,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왜 무례함과 실수, 엉망이 된 대화나 관계에 대해 이런 과정을 꼭 지나려고 하는가? 나는 문제적인 행동이나 무심한 공격으로부터 내가 받은 수치심, 괴로움, 고통 등을 다른 사람들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특정 다수의 구성원을 지키고 싶다는 거룩한 마음 때문이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건이 일어난 그 시점, 내가 나를 지킬 수 없었던 순간을 되돌려 돌보고 미래의 나와 주변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이 나 외의 다른 사람과 그 당사자에게도 크게 보이진 않지만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
학습 공동체는 일반적인 ‘공동체(Community)’와는 매우 다르다. 일반 공동체는 수동적으로 머물 수 있으나 학습 공동체는 그럴 수 없다. 일반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공동체에 소속되기 위해서 학습한다. 하지만 학습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학습하기 위해 소속된다. … 오히려 학습 공동체란 ‘학습 과정에서의 적극적인 관계’로 정의된다.
나는 더 이상 메일의 화자와 우정을 나누거나 관계를 맺진 않겠지만, 메일을 주고 받는 그 순간에는 학습하고 그 과정에서 적극적인 관계를 맺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삶의 동료로서, 시민으로서 거대한 학습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