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연구했던 사람들의 공통점의 하나는 그들은 모두 그들의 취약성을 완전히 포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취약하게 만드는 것들이 자신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취약성 때문에 편안하게 느낀다거나 또는 수치심 인터뷰에서 들었던 것 처럼 괴롭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의 안좋은 면을 꿰뚫어보거나 미워하는 것, 그로 인해 멀리하고 더 이상 애정을 주고 받지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 자주 상상하고 혼자 불안해하는 편이다. 작은 실수를 했을 때, 술자리에서 너무 많은 말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래서 말을 많이 하지 않겠다 다짐하고 나간 약속에서.. 거기에 너무 사로잡힌 나머지 나답지 않게 행동했다는 것에 대해.. 너무 나를 드러냈을 때도, 진정성 있게 행동하지 못했을 때도.. 어떤 상황에서든 스스로를 다그칠 수 있다.
타인을 과하게 신경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든 생각과 주의가 자신에게 향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그 내용이 조금 가혹하다. 모든 게 지적할 수 있는 주제들이다. 나는 스스로의 취약함에 대해 가장 많은 관심과 감시를 일삼으며 그것을 절멸시켜버리고 싶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감정을 선택적으로 마비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취약성, 비통함, 수치감, 공포감, 실망감 같이 나쁜 것들은 느끼고 싶지 않아, … 그런데 우리의 다른 감정에 영향을 주지 않고 이런 어려운 감정만 마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죠. 선택적으로 감정을 마비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런 감정을 마비시키면 우리는 즐거움도 마비시키고 고마운 마음도 마비시키고 행복감도 마비시키게 되죠. 그럼 우리는 비참해지고,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으며 취약성을 느끼게 되고, 맥주를 두어개 마시고 바나나 너트 머핀이나 먹게 되죠. 그러면 위험한 악순환이 시작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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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린 브라운은 ‘취약성의 힘’에 대해 13년 전 강연을 했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반응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사람에게는 취약한 면이 있으며 누구나 그것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당시엔 아직 대중에게 생소하고 놀라운 이야기였다. 얼마 전 친구가 인스타그램에 올려서 이 스크립트를 다시 봤는데 그때와 달리 다음 부분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그들은 우선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고 그 다음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친절할 수 있는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리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 부분이 어려운 부분이죠 - 그것은 진정한 자신을 보여 준 결과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의 지각을 버리고 '진짜 자아(authentic self)'가 되어야 했었는데 그것은 '연결'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는 것. 여전히 쉽지 않다. 이런 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식으로 배울 수 있는 걸까? 며칠만 지나도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일들로 자신에게 못되게 굴며 괴로워하는 나로선 무척 궁금하다. 요즘에는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서 억지로 자신을 속이는 말이더라도 되뇌이곤 한다. 예를 들어 게으름이 온 몸을 휘감았을 때는 ‘아 내가 좀 쉬고 싶은가보군’ 하는 식으로 말이다. 원하는 만큼 일의 성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도 ‘그럴 수 있지’하고 잊어 버리려 노력하고,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친구에게 어떤 말을 건낼까를 먼저 상상해보라는 어딘가의 조언을 활용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친구들에게는 절대 하고 싶지 않은 못된 말들, 심한 요구를 스스로에게는 너무 쉽게, 많이 했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저는 제 연구를 통해서 자신에 대한 가치감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은 용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용기(courage)와 용감함(bravery)의 차이를 잠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영어 단어 'courage(용기)'는 심장을 의미하는 라틴어 'cor'에서 왔는데 원래 의미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당신의 온 마음을 통해 솔직히 이야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간단히 말해서,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말을 할 용기가 있었다는 거죠.
예전에는 좀 더 취약함에 대해 잘 이야기 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사회생활이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해서인지 점점 그 능력을 잃어가는 것 같다. 다시 스스로의 취약함을 보듬을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부터 내야 할까. 역설적이게도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싶고, 다른 사람의 취약함도 보듬고 싶다는 용기에서 나오는 것 같다. 취약함을 드러낸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 용기와 연결을 소중하게 느낀다. 스스로에게 친절하지 못한 습관 때문에 여전히 나 자신만을 위한 일이라면 잘 움직여지지 않아서 여기서부터나마 시작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