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순차적인 동시에 랜덤 액세스가 가능하다. 책은 부피가 있는 물체다. 책은 유한하다. 책은 근본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시각적 공간 —일반적 코덱스를 펼친 두 페이지— 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책을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책에 쓸 수도 있다.
영상물이 여가 시간과 정신을 지배해 버린 지 오래지만, 왜인지 계속해서 책을 사고 종종 읽는다. 미디어 타입이 ‘텍스트’로 책과 같은 이북(e-book), 디지털 텍스트, 인터렉티브 콘텐츠도 마찬가지로 차고 넘치지만, 여전히 오프라인 서점에 가고 책들을 들춰보며 고양된 기분을 느낀다.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들춰보는 그 순간에 이미 책을 다 읽은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책장에 새 책이 하나 더 늘었지만 왠지 뿌듯하다. 구매 이후 뭔가 해야 하는 행동이 명확한 물건을 사고 나서 이렇게 이미 홀가분할 수가 있나? 이미 지식이 내 머릿속에 다 들어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드는 물건이 있을까? 어이없고 웃긴 얘기지만 정말 그렇다. 책은 도서관에 들어가는 자체로, 사는 자체로 어떤 만족을 준다.
그치만 물론 읽었을 때의 기쁨은 더욱 크다. 책을 읽다가 두세 시간이 삭제되어 버리고 정신이 돌아왔을 땐 다리에 쥐가 살짝 났던 경험은 내가 가지고 있는 어린시절의 가장 강렬한 기억 중 하나다. 어떤 세계에 흠뻑 빠졌다가, 거기서 빠져나와 순간적으로 현실의 시공간을 다시 느끼는, 두 가지 감각이 공존하는 그 짧은 순간의 감각은 정말 신비롭다.
초등학교에 가서는 다음 학기 책을 나눠주면 하루 만에 전부 다 읽어버리곤 했다. (트위터에서 어릴 때 이렇게 책을 읽던 애들이 커서 곧 너무 생각이 많고 좀 우울한 어른이 된다고 하는 우스갯소리를 본 적이 있다..) 실제로 많은 책을 읽으며 자란 나는 점차 도서관과 책장에서 고민, 괴로움, 외로움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다녔다. 삶이 거대하게 다가올 때마다 당연한 반응처럼 책을 찾아갔다. <경계에서 말한다>에서 조한혜정 선생님은 ‘이불 속에 들어가 혼자 책을 읽는 순간’의 감정에 대해 말하는데, 그것은 약간의 절박함과 외로움이 담긴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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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덱스(*낱장을 묶어서 표지로 싼 책의 형태)의 디자인은 물체 표면에 내려놓거나 높이 들어올리거나 얼굴에서 30~60센티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텍스트나 이미지를 보거나 손가락으로 점자를 읽기에 알맞다. 흥미로운 구절을 찜해둔 채 다른 구절을 들춰 보려고 페이지 사이에 손가락이나 서표를 끼워둘 수도 있다. … 미래의 자신에게 말을 걸기 위해 여백에 메모를 남길 수도 있다. 책은 우리에게 적합하고 우리는 책에 적응한다.
책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적인 미학과 의미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기도 했다. 책은 어떻게 이렇게 생겼을까? 이야기가 담긴 매체로는 너무 완벽한 형태가 아닌가? 넘길 수 있다는 형태. 글과 그림이 모두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열면서 시작되고 덮으면서 마무리 되는 이야기. 그래서 10년 전 쯤 직접 제본을 해서 일종의 그림책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이후에는 사람의 책장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7-8년 전 쯤 사랑하는 친구들, 예술가의 책장을 찍고 인터뷰한 뒤 기록으로 남기는 프로젝트도 혼자 했었다. 다시 해봐도 재밌을 것 같다. 약간의 기록을 공유해 본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는 혼자 읽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읽는 모임들에 관심이 갔다. 사람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 하는 책 모임에 참여하거나 기획해서 진행하기도 했다. 역시 재밌고 유익했다. 늘 마감에 압박을 느끼며 책을 읽거나 혹은 다 읽지도 못하고 모임에 나가곤 했지만..
이후에는 혼자 제본해서 친구들에게 파는 책이 아닌, 대중을 상대로 ISBN이 있는 두 권의 책을 만들어 볼 수 있었다. 친구들과 어떤 주제에 대해 인터뷰를 한 내용이 주가 되었다. 내 말과 생각이 책으로 나오는 일은 겸연쩍고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물건으로서든 내용으로서든 어떤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지금, 집의 컴퓨터에 있는 디지털 파일과 ‘책’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는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컴퓨터의 문서를 이루는 텍스트는 내용으로 취급하여 화면상에서 읽거나 이메일에 붙여 넣거나 게시판에 첨부하거나 인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텍스트는 과연 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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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로 일할 때는 원래 읽던 소설이나 사회과학 서적 등을 전혀 읽지 않고 억지로 정보를 전달하는 책만 읽었다. 전혀 써보지 않은 뇌를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지식은 ‘이야기’인데 정보만 전달하는 책에는 ‘이야기’가 없었다. 서사적 맥락이 없으니 처음에는 정말 어려웠다. 맥락이 있는 이야기로 되돌아가려는 관성을 어렵게 끊어내고 몇 년 후, 소설이나 사회과학 서적을 읽을 수 없게 됐다. 특히 너무 두꺼운 맥락을 가진 사회과학 책에는 약간 질리는 기분마저 들었다. 인지를 자주 하는 방향으로 뇌가 변하는 것을 체험했달까.
요즘은 테크니컬 라이터로 일하기 때문에 두 가지 종류의 읽기를 다 하고 있다. 뇌가 어디쯤에 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읽기’라는 행위가 얼마나 사람의 사고 습관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것을 매개하는 책은 얼마나 강력한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테크니컬 라이터로 일하면서도 내가 가장 본질적으로 관심을 갖는 부분은 ‘웹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읽고 학습하는가’이다. 나는 ‘이야기’로, ‘책’으로 읽고 학습하고 삶에 그 이야기들을 들여오거나 내 방식으로 소화하지만 웹으로도 많은 것을 배웠다. 웹은 뭔가 약간 다르다. 웹은 수많은 링크와 거기 있는 내용을 묶지 않고 분산시켜 내 맘대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효율적으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스크롤하기’와 ‘책장 넘기기’ 매우 다르고 또 비슷하다.
휴대용 컴퓨팅 기기가 줄기차게 책을 닮아가는 것은 코덱스 자체가 전형적인 휴대용 저장•인출 기술이기 때문이다. … 코덱스는 순차적 읽기와 랜덤 액세스가 둘 다 가능한데, 이는 컴퓨터와 매우 비슷하다.
반면에 디지털 자료는 늘 가변적이다. 정적인 공간의 레이아웃도 갖고 있지 않다. …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전자책들이 스크롤 바를 삭제하는 대신, 사용자가 디지털 페이지를 종이책처럼 손가락으로 넘길 수 있게 구현한다. … 여전히 종이 출력물에서만 존재하는 중요한 3차원의 깊이는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배우고 기억하는가>, 제레드 쿠니 호바스)
문화적 기술들이 모방하고자 하는 본보기가 된 것은 책 형식—스크롤 능력과 랜덤 액세스 능력을 조합하여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건너뛸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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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책에 대한 글을 쓰다보니, 곧 나와 책의 역사를 짚어보게 된 것 같다. 나는 그냥 읽고 있다, 다 읽지도 못하는데 사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모습으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요즘은 책을 읽고 그 내용으로 뉴스레터를 쓰고 있다. 나중에 이 관계를 보면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마음 깊숙한 곳에 늘 그리워하는 것이 있다면 사람들과 같은 책을 읽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책을 펴두는 시간같은 것이다. 그래서 대학교 교실에서 늘 평온함을 느꼈다. 무언가 읽고, 사유하고, 자기 방식으로 해석한 뒤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시공간이 사람의 일생에 자주 허용되진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이런 시간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