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위상학(2020)>, 한병철 

폭력행위가 발생하는 상황은 종종 시스템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폭력의 상황은 시스템적 구조 속에 편입되어 있으며 …. 그 자체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구조들에서 비롯된다.

두 명의 삶을 앗아간 폭력에 대해 생각한다. 특히 서이초 선생님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아직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많은 개인들의 문제를 떠나 직장으로서 학교라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학교는 학생 뿐 아니라 교사를 보호해 주어야 한다. 선생님이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얼마나 여러 차례 시스템에 호소하고 요청했을지, 그리고 그 요청들은 어떻게 또 왜 묵살되었을지 생각한다. 명확한 보고 시스템이 있는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일상에서 학교나 직장으로부터 보호받을 기대, 인간으로서의 권리나 한계를 이해받을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새삼 얼마나 학습된 일인가 싶다.

죽음으로 가기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무력한 사람은 없었다. 많은 시스템이 사람들을 그대로 내버려둔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번 목격했다. 사람들은 매번 호소했고, 신고했고, 보고했지만 시스템은 듣지 않는다. 사람들은 끝내 마지막까지 내몰려 죽고 만다. 기사를 접하고 우리는 다시 또 충격을 받고 슬퍼한다. 그리고 또 다시 각자의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폭력은 타자를 구부려서 결국 부러지게 만든다. 폭력은 희생자에게 어떤 행동의 여지도 주지 않는다. 행동 공간의 크기는 0으로 떨어진다. … 폭력은 타자를 파괴해버린다.

공동체나 시스템도 내면을 지닌다. 자신을 향한 자기중심적 노력, 자기 정립은 이들의 고유한 특성에 속한다. 외부로부터 파괴적으로 개입해 들어오는 폭력은 내면의 해체를 초래한다. 폭력은 자신을 정립하는 자아를 제자리에서 이탈시킨다. 그래서 폭력은 그렇게 경악스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