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순전한 자기만족.똑똑해 보이거나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거나, 죽은 뒤에도 기억되거나, 어린 시절 나를 무시했던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다 등등의 바람. 이러한 동기가 없는 척한다면 속임수, 그것도 큰 속임수다. (…)
2. 미학적 열정.외부 세계의 미에 대한 인식, 혹은 올바르게 배열된 단어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 … 철도 안내 책자 수준만 넘으면 그 어떤 책도 미학적 생각에서 자유롭지 않다.
3. 역사적 충동.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짜 사실을 찾아서 나중을 위해 저장하려는 욕구.
4. 정치적 목적. 세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추진하고, 우리가 어떤 사회를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자 하는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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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내가 보내는 뉴스레터에는 조지 오웰이 딱 떨어지게 네 개로 나누어 둔 동기들이 전부 흐릿하게 있다. 1-2주에 한 번, 주말마다 노트북 앞에 앉아 뭐라고 딱 떨어지지 않는 글을 쓰고 있다. 심지어 60명 남짓한 사람들에게 벌써 스무 번째 그런 글을 보내기까지 한다.
처음에는 내 안에 있는 이야기나 생각을 글로 길어올리는 것, 즉 쓰는 행위를 통해 얻는 위안이 커서 뉴스레터를 쓰기 시작했다(순전한 자기만족, 미학적 열정). 나에게는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쉽고 싼 방법이기도 했다. 쓰고 나서는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뉴스레터’, ‘구독’이라는 시스템을 사용했던 것 같다. 스무 번 정도 보내고 나니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어떤 글을 읽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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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에세이, 산문은 재미 없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자기의 시시콜콜한 일상과 거기에 대한 단상을 이야기하는 게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초유명한 피천득 에세이 정도만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20대 내내 글쓰기에서 정치적 목적과 역사적 충동을 글로 쓰는 것을 훈련해와서 그런지 차라리 완전한 정치적인 글은 오히려 쓰기도 이해하기도, 감화도 쉬웠다.
하지만 대 v-log의 시대를 지나며, 불특정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는 산문도 종종 즐겁게 읽는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쓰는 내 이야기가 의미 있을까 의심한다. 디지털 세상에 별 시덥잖은 잡음을 한 줄 더 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심에도 불구하고 지난 번 설문조사에서 ‘글쓴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와 ‘매체(책, 기사, 영화, 전시 등)에 대한 소개와 의견’을 읽고 싶다는 의견이 가장 많이 나왔다. 사람들과 이 뉴스레터를 두고 내가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나는 왜 쓰는가?
책임감 있는 형태의 자유로움
주제는 작가가 사는 시대에 의해 결정되겠지만 — 적어도 지금처럼 요란하고 혁명적인 시대에는 정말 그렇다 — 작가는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이미 어떤 감정적 태도를 갖게 되고, 결코 여기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없다.
나도 글을 쓰기 전에 어떤 감정을 갖는다. 일기를 쓰기 전에는 왠지 모를 착잡한 마음이 든다. 지치는 일상을 돌아보는 것 자체가 지치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기 때문인 것 같다. 노션에 일 때문에 문서를 쓸 때는 물론 더 착잡한 마음이..(ㅋㅋ) 든다.
뉴스레터를 쓸 때는 어떤 책임감이 생긴다. 그래서 착잡함이 없는 유일한 글쓰기 행위가 된다. 독자가 있다는 이유도 하나겠지만, 더 큰 것은 흘러가는 나 자신을 붙잡고 어떤 매체와 함께 글을 쓴다는 형식 자체가 책임감을 준다. 그 느슨한 형식이 오히려 나를 착잡함에서 자유롭게 만든다. 정신없는 일상 속 수많은 정보들 중 내가 관계 맺고 싶은 주제를 선택하고, 흘러가버리는 생각을 붙잡아 거기에 대한 글을 남기고, 마지막으로 누군가와 나누는 것. 덕분에 제대로 살아간다는 감정이 드는 순간 하나를 만든다. 디지털 세상에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형태 정도나마 남길 수 있어 다행스럽다.
내가 만들고 싶은 산문은 곧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의 모습과 닮아 있다.
나는 건강하게 살아 있는 한 산문 형식에 계속 매력을 느끼고, 이 세상을 계속 사랑하며, 확고한 대상과 쓸모없는 정보 부스러기에서 계속 즐거움을 찾을 것이다.
세상과 관계 맺고 관심 갖기 어려운 요즘 나는 스스로 정해둔 글쓰기로 최소한의 관계를 맺는다. 그 노력은 매일의 역할에서 벗어나 그냥 한 명의 인간으로서 나와 세상을 돌아보게 만든다. ‘쓸모 없는 정보 부스러기’와 감정 조각들을 하나의 글로 꿰어내는 책임감 속에서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