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20세기(20th Century Women)>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아주 오래 전에 봤던 <비기너스(Beginners)>도 어렴풋이 따뜻한 영화였던 기억이 난다. 감독이 누군지는 굳이 찾아보지 않았다. 그것도 <우리의 20세기>를 만든 사람이 백인 남성인데다가 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일 줄은 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결국 내가 살아있기 위해, 나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와닿았다.
매일의 일상, 수많은 시간을 점유하고 있는 ‘일’. 요즘 나에게 의미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소위 말하는 ‘커리어 패스’라는 것이 나에게 맞는 일과 나의 발전인지 스스로 묻게 된다. 이제 사회생활을 한 기간이 짧지 않은데도 내게는 여전히 회사라는 조직이 어렵다. 조직 구조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와 타인을 납득시킬 수 있도록 나를 설명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문화인류학을 전공하고 늘 글쓰고 기획하는 류의 일을 하다가 20대 후반에 갑자기 IT 업계 개발자라는 완전히 다른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그런건지도 모른다. 이어지지 않는 것 같이 보이는 내 나름의 선택들이 나름대로 “스토리텔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진 거다. 그런데 이 여정이 길어질수록 점점 나보다 타인에게 납득이 되는스토리텔링으로 점점 기울어져 온 것 같기도 하다.
좀 더 메타적인 의미와 가치를 가져다 주는 일을 해야 내가 나로서 더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마이크 밀스가 말한 것처럼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해’, 그리고 거기에 더해 ‘세상에 도움이 되기 위해’ 일을 하는 게 나에게는 필요하다. 이렇게나!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면.. 나 뿐만 아니라 외부 세계에도 어떤 의미를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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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친절하고 너그러워지려고 애쓰는 …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가 본인에게 잘 맞는다고, 종종 부끄럽지만 그렇다고 말해준 게 가장 좋았다. 나 역시 언제나 올바르고 상냥한 것을 지향하는 것, 따뜻한 세계에 대한 추구가 너무 유아적인 생각은 아닌지 종종 창피하다. 나이브하고 어린 것이 아닌가? 또 그런 유토피아적인 생각이 작은 문제에도 호들갑 떨게 하고, 호들갑을 떨고 나면 현실을 모르고 나약한 마음을 가지며 살아가는 것 같아서 겸연쩍기도 하다.
그치만 요즘은 말도 안되는 일들 속에서도 여전히 친절하고 따뜻함을 유지하는 게, 유머를 잃지 않는 게 정말 강한 것임을 아주 조금씩 깨닫는다. <에에올(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에서도 나는 웨이먼드가 좋았다. 그가 “Be Kind.(내가 아는 것은 우리는 다정해야해, 제발 다정해지자. 특히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는 더욱.)”를 외친 덕분에 에블린은 최악의 상황에서 자기가 가진 강한 힘의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오늘도 내가 정말로 원하는 일인지 물음을 갖는 일을 하러 따뜻한 집에서 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따뜻하고 친절하게, 유머를 가지고 일을 해나가야 한다. 친절하고, 따뜻하고,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사람들이 그저 즐겁고 행복해서가 아니라 모든 게 힘들 때도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더 다정해지기 위해("Be Kind") 강해진 것임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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