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시간의 거리를 넘어 Morning Read 15. ☕️ "Dear. Copenhagen (1)"
-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Communal singing makes people happy)> - 이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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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11년 만에 덴마크 코펜하겐에 다녀왔다. 이전 뉴스레터 <당신만의 집>에서 짧게 나눴던 것처럼, 덴마크는 성인이 된 나에게 “많은 것을 난생 처음으로 발견할 수 있고, 인생의 대부분을 아직 겪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누군가가 되어가는” 과정을 경험한 장소로 내 안에 깊게 뿌리박혀 있는 곳이다.
내가 옳다고 믿고 상상하던 가치들이(그러나 한국에서는 너무 이상적이라고 판단되기 쉬운) 실현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마치 제 2의 고향같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막상 가려니 마음 한 편에 ‘거기서 나고 자란 것도 아닌데 어떻게 고향이라고 할 수 있겠어?’, ‘다시 가서 보니 사실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면?’ 같은 일말의 불안이 있었다. 큰 의미가 있다보니 다시 가보는 것도 큰 일처럼 느껴지고 왠지 용기가 필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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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쩐지 내 경험을 책으로 옮겨 볼 마음은 어쩐지 쉽사리 들지 않았다. 한국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일하며 수십 년을 살아온 내가 단지 1년간 그곳에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단숨에 덴마크 사람들이 맛본다는 그 ‘행복’의 맛을 서술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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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이자 친구인 고나가 쓴 것처럼 나역시 수 년 간 휘게(hygge), 덴마크 및 북유럽의 라이프스타일이 물건이나 소비를 통해 유행하는 동안 오히려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한국에서 그런 가치들을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과도하게 이상적으로 보인다는 문제도 있었고 본질적인 것보다는 소비재를 통해 가치 전달이 되는 방식이 더 쉽고 빠르게 이뤄지는 것처럼 보여서 지레 좌절한 탓도 있다.
그렇다고 본질적인 것을 이야기 하자니 왠지 패배주의적인 감정부터 올라왔다. 한국과 덴마크는 사회, 정치, 경제적으로 모두 다른 역사와 맥락을 가지고 여기까지 왔는데 무조건 이것이 좋다, 이상적이다 라는 이유로 소개한다는 게 딱히 말이 되지도 않고 설득되기도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화적 사대주의자가 되는 것도 나름 쉽지가 않다. (ㅋㅋ)
그러다 지난 해 하반기에 이책을 만났다. 책을 읽으며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감정을 써내려가 준 고나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또 알 수 없는 그리움에 많이 울기도 했다. 11년만에 다시 코펜하겐 공항에 착륙한 순간에도 눈물이 터졌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여전히 그 순간에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아직도 한국에서 바로 가는 직항이 없어 14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런던에 머물다가 덴마크로 이동했다. 머물던 곳의 집주인 분들도 다시 뵙고, 다녔던 학교에서 만난 국제반 친구들도 만나기로 했다. 친구들은 각각 노르웨이, 체코에서 넘어올 예정이었다. 11년 만에 만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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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le sal(작은 강당) / 11년 만에 학교 도착 후 친구들과 함께 감격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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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단 하루도 어김없이 두 곡의 노래로 시작되었다. 더도, 덜도 않고 딱 두 곡을 연이어 부르고 나면, 어느새 잠이 깨고, 정신이 명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하루의 일과를 브리핑하고, 생일을 맞은 사람들을 노래와 박수로 축하해 주고, 아픈 이들이 있는지, 그들을 돌볼 사람은 있는지를 빼놓지 않고 확인했다. 학교 선생님들 중 그 누구도 우리가 왜 노래를 부르는지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구태여 설명하지는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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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닌 학교는 덴마크어로 ‘Folkehøjskole(폴케 호이스콜레)’다. 한국말로 해석하자면 덴마크 시민학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해석이 정확하지는 않다. 사실상 덴마크 및 스칸디나비아 바깥에는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좀 더 장황하게 설명하자면 ‘Life long Education’이라는 가치를 가지고 만들어진 ‘모두를 위한 학교’가 맞겠다. 아주 오래 전 시민 대부분이었던 농부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해서 학습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든 학교라고 배웠다. 지금은 보통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으로서의 인생을 앞둔 덴마크 사람들이 이 학교에 간다. 요리, 미술, 사회과학, 운동 등 온갖 분야의 폴케 호이스콜레가 있고 나는 우연히 정치와 사회 과학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학교에 들어가게 됐다. 아무래도 덴마크에만 있는 학제다보니 국제반이 있는 경우가 흔치 않아 가게 됐는데 결과적으론 잘 맞았고 좋은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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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떠난 뒤 매일 아침 노래로 시작하던 그 강당을 가장 그리워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친구들 모두가 그랬다. 다시 학교에 찾아갔을 때도 그렇게 아침을 시작하던 ‘lille sal(작은 강당)’에 가장 먼저 갔다. 책을 통해 내가 그리워했던 이유를 알게 됐다. 고나의 설명처럼 그 순간에 우리는 언어나 국적의 차이를 모두 무시할 수 있는 공동의 시간을 만들었고, 케어하는 시간을 이어서 가졌다. 모두가 모여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고 한 명 한 명 체크하며 하루를 시작하자고 하는, 가장 기억에 남는 비효율의 시간이랄까.
넘치게 주어지던 자유시간을 ‘허송세월’, ‘잉여로움’으로 바라보았던 나로서는 이렇게 넉넉한 시간을 즐길만한 상상력도, 여유도 없었기에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수업에서만 의미 있는 배우밍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나의 착각이었다. 휴식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지 ‘일의 하수인’ 정도의 지위로 여겼던 내가 진정한 쉼이 무엇인지, 전환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언젠가 건너야 할 관문이었을런지도 모른다.
… 모든 수업은 특출 난 상위 몇 퍼센트를 우선으로 키워내는데 주력하기 보다는 교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빠짐없이 제 역할과 자리를 찾아 자기 몫을 할 수 있도록 잘 배분하고 그것을 돕는 데에 큰 방향이 잡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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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서의 경험이 강렬한 이유는 내가 누구보다 경쟁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려고 빠릿하게 움직이며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으며 쉽게 동화되는 자신이 조금 두렵기도 했다. 내가 알고 있었고 당연하게 추구해오던 가치와 질서가(그러면서도 내심 조금 불편하고 의문스러웠던 것이) 실은 유일하고 보편적인 게 아니라 좁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 사람들은 온갖 모습으로 다양하게 살아가고 어떤 시선에서는 비효율인 것들 사이에서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 그런 것을 보고 경험하면서 내가 바라는 나의 삶이나 주변의 모습, 사회에 대해서 더 많이 느낀 것 같다. 생각하는 게 아닌 삶으로서 느끼는 경험을 했달까. 삶에 체화되며 한 번 열린 지평은 쉽게 닫히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얻는 기회만큼 다른 사람도 같은 기회를 얻어야 한다는 것’, ‘또한 다른 사람의 기회만큼 나의 기회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생기는 감각이었다. 모두가 공평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틀림없이 믿고 있을 때 생기는 평화로움이었다.
… 그 속에서 한 사람의 ‘위대한 시민’이 되어가는 것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원리를 어슴푸레하게나마 알게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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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 not know, what I have learned, but I am sure I’ll never forget it.”
내가 뭘 배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절대 까먹지 않을 거라는 것만은 확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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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ning Read는 제가 한 주, 혹은 두 주 동안
매일 제가 읽고 쓴 것 중 나누고 싶은 것을 추려서 보내는 뉴스레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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