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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함께 지낸 파트너와 결혼 제도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기사에서 “성인이 타인과 함께 살겠다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받는 방법은 결혼밖에 없다.”고 한 것처럼 한국에 사는 성인 두사람이 가족으로 결합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결혼이다. 그런데 또 동성 파트너끼리, 혹은 친족이 아니지만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할 수 없는 선택이다. 가족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 단 한 명의 이성 파트너가 아니었다면 이 유일한 선택지를 선택할 수조차 없다는 게.. 운이 무척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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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동반자는 결혼에 준하는 동거, 부양, 협조의 의무를 지닌다. 사회보장과 세제 지원을 받기 위해서라고 한다. 상대방의 가족과 인척 관계가 되거나 상속권이 없는 점은 결혼과 구별된다. 관계 해소도 이혼에 비해 간소하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족을 만들고 싶다면 그 이유는 함께 살고, 힘들 때 서로 기대고, 삶을 함께 꾸리면서 성장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위에서 말한 동거, 부양, 협조의 의무와 같다. 결혼 제도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상대방의 가족에는 사실 관심을 갖기 어렵다. 관계 해소의 절차적인 문제도 간소하다면 더 좋다. 그런데 국가에서 제공하는 여러 제도는 단순 동거관계일 때보다 결혼 관계에 있을 때 훨씬 많다. 생활동반자법에서도 이런 제도적 보장이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충분한 선택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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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내가 이 사람과 가족이 되고 싶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라는 걸 떠올리니 어색하다. 만약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어차피 가족이 될 거라면 ‘굳이’ 생활동반자법을 선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런 어색함이나 선택지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비혼 청년, 성소수자 등 여러 관계가 해당할 수 있겠지만 … 40~50대 이상에게 ‘누구와 살 것인가’는 현실적으로 절실한 문제다. … 중년이면 당연히 배우자가 있을 것이라고 전제했다. 현재는 여러 통계를 봐도 이혼, 사별 등으로 인해 수십 년 동안 혼자 살아야 할 가능성이 큰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 도시락 배달해주고, 무료 공연 보여주는 게 노인복지의 전부가 아니다. 누구와 살아갈지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대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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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생활동반자법이 진선미 의원을 통해 발의됐을 때가 2014년이었다. 10년 동안 빠르게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모습이 달라져서, 지금은 좀 더 해 볼만 한 이야기가 된 것 같다.
나는 생활동반자법이 다양한 삶의 방식을 지지하면서도 빈곤, 청년, 노인 등 사회적인 문제를 완전히 가족주의로도, 개인주의로도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 우리에게 가족을 구성한다는 게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상호돌봄'이 필요한 인간의 근본적 삶의 양식과 가족을 구성할 권리에 대해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