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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부터 스무 명이 넘는 젊은 노동자가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일은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 연구팀은 아이폰 출시 리듬에 맞춘 장시간 초과 노동, IT산업 기밀 유지를 위한 과도한 노동 규율, 노동자들이 결속할 수 없도록 배치된 기숙사, 노동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학생 인턴 착취 등 글로벌 생산 체인의 구조적 횡포를 낱낱이 고발했다. (<빈곤 과정>)
내 MBTI에는 N(직관적, 공상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종종 내가 지금 디스토피아적 공상과학소설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닌가 가끔 묻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그렇다.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을)그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일단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가도 어쩌다 한 번씩 갑자기 이 모든 것이 너무 나이브하게 느껴져서, 혹은 말이 안되는 것처럼 느껴져 못견디겠을 때가 있다.
그건 무언가를 새로 알게 될 때다. 알게 된다는 것은 때로 내가 가지고 있던 관점을 깨버린다. 잔잔하던 일상의 평온도 깨트린다. 알게 된다는 것은 내가 누리고 있는 것과 나의 자리에 대한 모종의 책임 의식을 느끼게 한다. 나는 ‘알게 됨’이 늘 즐거운 과정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책임을 지는 것과 책임 의식을 느끼는 것은 다르다. … 대개의 경우 당신에게 실질적인 책임이 있을 때 당신은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한다. 물론 당신에게 실절직인 책임이 없을 때도 책임 의식을 느낄 수는 있다. 그리고 때로는 당신에게 책임이 없을 때도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한다. … 왜 그럴까? 법학에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법률의 원칙이 하나 있다. “이득을 누리는 자는 빚도 감당해야 한다Qui sentit commodum, sentire debet et onus.” 혜택을 입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못말리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이 웃긴 철학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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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다는 것만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먼저 내가 누리고 있는 것과 나의 자리, 그리고 그 주변 풍경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일을 하다보면 ‘문제 정의’, ‘문제를 푼다’, ‘문제를 푸는 역량’이라는 말들을 자주 접한다. ‘문제를 잘 풀려면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가장 중요해요.’ 스스로 그런 언어를 구사하기도 한다. 하다가 문득 멋쩍어지는 순간이 온다. 지금 우리가 그 문제를 전심전력으로 풀어야 하는 게 정말 맞나 싶어서다. 주제 넘는 소리일 수 있지만 가끔 이 많은 똑똑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푸는 문제의 범위나 종류에 민망한 회의감이 밀려올 때가 있다. 혹은 그 결과 생기는 다른 문제들을 보기도 한다. 그치만 그 문제도 우리가 또 풀면 되는 거죠. (나는 가끔 낙관이 지닌 천진한 동력이 무섭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좀 더 본질적인 문제들을 풀 수는 없을까?
물론 아주 작은 아이디어, 혁신이 대다수의 삶을 바꿔놓는 일은 마법 같이 멋지게 느껴지기도 한다. 개인용 PC나 스마트폰 같은 것. 그것을 만들어 낸 창업자의 범상치 않은 면모들이 조명된다. 그들의 집착. ‘작은 성공’에서 시작해 점점 발전해 온 창업자들의 이야기. 차고에서 시작한 (스탠퍼드..)대학생들의 사업. 작은 시장을 성공적으로 접수하고 큰 시장으로 가라는 이야기들... 소수의 성공신화가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진보와 혁신의 아이콘이 된 모습에 갸우뚱하다. 그러다가 그들이 절세를 위해 본사를 아일랜드에 뒀다는(애플, 페이스북, 구글)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폰 노동자들이 자살을 하자 문제 해결로 건물 아래에 그물을 쳤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면 갑자기 모든 성공신화가 볼품없게 느껴지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아마존은 진보를 위해 힘을 쏟는 기업처럼 보인다. 심지어 신입 직원의 평균 시급이 18달러가 넘는다. 그러나 동시에 아마존은 직원들이 더 나은 노동 조건을 위해 단합할 생각조차 못하게 하고자 한다. 노동조합을 조직하려는 직원들의 움직임을 아마존만큼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기업도 없을 터다. …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부유한 베이조스는 2014년에서 2018년까지 세금을 겨우 0.98퍼센트 납부했다.
아마존은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겨냥해 정의로운 기업 이미지를 선전하지만 이런 이미지 뒤에 비인간적인 노동 조건을 숨기고 절세를 꾀하는 여느 기업 가운데 하나다. 200년이 넘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진보적 자아상과 철저한 이익 극대화의 결합이 지금처럼 쉬웠던 적이 없었다. (<잘못된 단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