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기를 원하는 어떤 것들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지만, 그리도 우리는 알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정보의)도구적 가치가 나 자신의 행복이나 다른 사람의 행복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프리랜서 에디터 해인님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두둠칫 스튜디오>에 참여한다는 좋은 기회로 <TMI: 정보가 너무 많아서>라는 책을 읽게 됐다. (팟캐스트는 2월 13일에 업로드 된다.) 이 책은 <넛지>의 저자인 캐스 R. 선스타인이 썼는데, 그는 오바마와 바이든 정부의 정보부 국장을 역임했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 정보가 많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줄 것 같다는 약간의 기대와, 미국에서는 정보와 정책을 어떻게 연결시키는지 궁금해서 읽게 됐다.
책의 초입에 저자가 어찌나 공을 들여 설명 하는지, 꽤 어려운 주제임에도 설득됐다. 요는 이렇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정보를 습득한다. 정보는 자율적인 삶을 살게 해주기 때문에 행복과 연결되며, 따라서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스스로 삶을 통제하게 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곧 정치적인 문제가 된다.
저자는 정보에 도구적 가치와 정서적 가치 두 가지가 모두 있는데, 정서적 가치가 무척 강력하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결국 행복을 얻기 위해 정보를 취한다. 그 행복은 정보를 알고 나서 그 정보를 바탕으로 스스로 삶을 통제할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기후 위기나 정치 뉴스를 보고 나면 우울하고 더 알고 싶지 않을 때가 생기는데, 그건 직접 문제를 해결할 통제력이 없다고 느껴서라고 할 수 있다.
이 행복, 통제는 곧 자율성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결국 ‘정보 공개 요구의 목적은 전적으로 사람들에게 자율적인 선택을 통해 행복을 보장하기 위함'이라는 매우 미국적이고 정치적인 논지를 가진 책이다. 정보를 통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생긴다면 정보 공개 그 자체가 복지를 증진한다는 저자의 말에 일면 공감하면서, 어떻게 정보가 삶의 자율성과 통제 문제와 연결 되고 복지까지 연결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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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목할 것은 (정보의)도구적 가치가 나 자신의 행복이나 다른 사람의 행복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좋고 그들의 삶과 관심을 아는 것 자체가 좋기 때문에 관련 정보를 원한다.
이 책은 행동경제학 실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석해 내기에는 사람들은 무척 비균질적으로 정보를 소비하고 서로 다른 감정을 느낀다는 내용이 자주 나온다. 심지어 개인의 회피 성향과 낙관적 성향, 회복력 정도도 정보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 회피 성향이 심하면 불쾌한 정보는 보려고 하지 않는다. 낙관적이거나 정보로부터 빠르게 회복하는 사람은 불쾌하고 우울한 정보도 소비한다.
개인의 도덕이나 윤리도 정보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불쾌하고 우울해지더라도 ‘훌륭한 시민이라면 알아야 해’라면서 정보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혀 모르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나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하지만 전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것 자체가 윤리적으로 옳다고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그 정보를 소비한다. 정보는 중립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 개인이 정보를 소비하고 추구하는데에는 정말 다양한 기준들이 적용된다. 최근 정치 뉴스를 피하려고 노력하는 나의 회복력과 낙관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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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보가 정치나 정책과는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슬러지’라는 개념을 가져온다.
슬러지는 사람들이 어느 한 방향으로 가고자 할 때 직면하는 일종의 크고 작은 마찰(비용)을 가리킨다. … 예를 들면, 비용은 <정보> 취득과 관련 있을 수 있으며, 그런 경우에 정보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많은 비용이 들 수 있다. <시간>하고도 관련 있을 수 있는데 사람들이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에게 좌절이나 낙인, 수치심 등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심리적인> 부분과도 관련 있을 수 있다.
슬러지는 곧 개인이 ‘정보를 얻고 그것을 바탕으로 행동하기 위한 비용, 어려움’을 뜻하는데, 다른 말로 얘기하면 ‘행정 부담’이다. OTT 서비스 등의 구독을 취소할 때 우리가 자주 겪는 안티 패턴 UX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공공 부문에서는 이것이 정치적인 문제가 된다. 비용이 편익을 압도할 때 사람들은 정보 취득을 포기한다. 특히 바쁘거나, 가난하거나, 장애가 있거나, 나이 든 사람의 인지 한계는 작기 때문에 정보 제공과 슬러지 제거는 복지 문제가 된다. 낙인, 좌절,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도 슬러지라고 소개하는 것을 보면서 선별적 복지 제도에서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여러 과정도 일종의 슬러지라고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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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몇 가지 예시만 깊게 파고들었다면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너무 많은 실험 사례가 나와 인지 한계 이슈로 집중력을 잃었다.. 책 제목과 같이 책에도 '정보가 너무 많아서' 뒤로 갈수록 읽기가 힘들다. 또 앞서 다루었듯 비균질적인 개인의 기준을 행동경제학으로 풀다보니 한계가 있어 보였다. 인류학적으로 접근한다면 어떨까 혼자 상상해봤다.
다만 정책적으로 이런 문제를 다루는 미국이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또, 내가 정보를 취하는 이유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됐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고, 통제력을 갖고 싶으며, 더 윤리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서 정보를 취한다. 뉴스레터를 읽고 계신 분들은 어떤 정보를 보고 있는지, 또 왜 보고 있는지 각자의 이유가 궁금해 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