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나는 조르조 아감벤의 <장치란 무엇인가>다. 그 안에 ‘동시대인이란 무엇인가’라는 글 한 편 때문이다. ‘동시대인’이라고 하면 마치 시대의 조류에 잘 맞춰서 빛나게 살아가는, 시대와 잘 어울리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여기서 동시대인이란 ‘자신의 시대와 완벽히 어울리지 않는 자’, ‘자기 시대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 자’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에게는 누구나 ‘동시대인’적인 부분이 있을 것이다. 시대와 100% 일치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물론 아감벤의 설명은 조금 더 거창하지만..
동시대인이란 자신의 시대에 시선을 고정함으로써 빛이 아니라 어둠을 지각하는 자이다. 이 어둠을 볼 줄 아는 자, 현재의 암흑에 펜을 적셔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는 자이다. … 세기의 빛에 눈멀지 않고 그 속에서 그림자의 몫, 그 내밀한 어둠을 식별할 수 있는 자만이 동시대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 그렇기 때문에 동시대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 용기의 문제이다.
이 내용을 읽고 무척 좋았다. 이 책을 접했던 당시 나는 어떤 어두움을 이해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것과 단순히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것을 구분해 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대의 어두움을 자각하고 그 안에서 빛을 찾으려면 나와 내 주변, 혹은 그 멀리까지 섬세하게 관찰하고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큰 정성이 든다. 나는 그 정성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즉, 부정적인 것, 어려움, 문제들을 발견하고 그것에 대해 깊이 파고드는 것은 사실 긍정성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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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 연대하고, 긍정하고, 희망을 찾으세요. 그 어려운 길이, 우리에게 더 어울립니다. — 칼럼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계속 ‘어둠에 시선을 고정’하다 보면 냉소와 비관이 찾아오기가 쉬운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전보다 그런 마음에 대한 준비가 좀 더 되어 있다. 그런 마음의 징조가 보이면 동시대성이고 뭐고 일단 일시정지하고 에너지와 관심의 방향을 바꾼다. 내 마음에 친절과 평화를 깃들이기 위한 연습에는 어두움을 마주하는 것만큼이나 큰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하다.
또, 누구도 홀로 어둠을 응시하며 나와 주변의 수많은 문제를 짊어질 수도 해결할 수도 없다. 마치 이런 마음을 알았던 것처럼 아감벤은 ‘동시대인이란 무엇인가’라는 글 앞에 ‘친구’라는 글을 써 두었다.
우정은 철학의 정의에 너무나 밀접히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는 우정 없이는 철학이 정말로 불가능하리라고 말할 수 있다. 철학이란 이름 안에 필로스(philos), 즉 친구가 들어 있을 정도로 우정과 철학의 내밀한 관계는 상당히 깊다.
친구가 존재한다는 것을 친구와 함께 지각하는 일이 필요한데, 이것은 함께 살며 서로 행위와 생각을 나누는 일을 통해 성립한다. … 우정은 존재한다는 순수한 사실을 함께-지각하는 것이다. … 이 대상 없는 나눔, 이 근원적인 함께-지각함이 정치를 구성하는 것이다.
나는 용기 있는 동시대인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에게 친절하고 싶다. 또 주변 사람들과 어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빛을 궁리해 보고 싶다. 새해, 우리가 걷어야 할 어둠을 충분히 마주치면서도 함께 빛으로 나아가려는 용기를 만들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