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 사는 앤드루가 유쾌한 전자 우편을 보냈다.
‘이번 주에 마이크가 왔는데, 걔랑 있으면 정말 재미있어. 멋진 한 주였고, 둘이서 온갖 웃기는 짓들을 했지. 어제는 차를 몰고 위스콘신에 갔는데 … ‘야드 세일’ 표지판을 본 거 있지. 아, 내가 그걸 보고 얼마나 군침을 흘렸을지 상상이 가?
그래서 거길 갔지. 교외 주택들이 늘어선 평범한 길 끝 쪽에 있는 집이었어. … 집들 사이에는 온갖 나무와 관목이 자라고, 잔디는 ‘어느 특정 지점까지만’ 손질되어 있고 나머지는 그냥 풀밭이야. 세일 표지판이 붙은 차고는 지면보다 15센티미터쯤 낮은데, 엄청나게 많은 물건이 꽉 차 있는 데다 정말 예쁘게 진열돼 있었어.
못 사거나 안 산 다른 굉장한 물건들이 너무 많지만, 그야말로 사랑스러운 꿈이었어. 그리고 그 판매자들! 마이크와 나는 그들과 어울려 살 수 있다면 당장 짐 싸서 이사라도 할 판이야. 다들 우리가 반값 계산하는 걸 도와주려 안달이야.
그런 날이야. 사과는 없어도, 노랑과 갈색과 빨강 나무들이 많아. 그냥 평온하게 차를 타고 그 속을 지나는 거지.’
그때 앤드루가 보낸 전자 우편이 또 한 통 도착한다. 차를 타고 버지니아주를 가로지른 얘기다. 어느 신호등 앞에서 차를 멈춘다. … 한 불량배 무리가 줄줄이 길을 건넌다. 앤드루가 즐거운 시선으로 그들을 보고 있는데, 그중 한 여자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둘을 가리킨다. 앤드루는 어리둥절한 채 그 여자의 입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뭐라는 거지?
“저 빌어먹을 호모 새끼들 좀 봐! 빌어먹을 호모 새끼들아! 엿이나 먹어!”
차 안에 서글픈 침묵이 흐른다.
“하지만 마이크, 저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이봐… 남자 둘이 한 차에 타고 있잖아… 누가 봐도 즐거운 얼굴로… 스웨터를 입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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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를 하기 위해 무난하게 볼 수 있는 유튜브를 틀었다. 모델 출신 연예인이 자기 패션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 남긴 댓글을 읽는다. “GAP을 GAY로 봤네.” 유튜버의 반응이나 자막, 편집이 마치 불쾌한 농담을 들은 것 같은 분위기로 바뀐다. 나야말로 갑자기 너무 불쾌해져 버렸다.
맥락은 이렇다. 유튜버의 상반신만 나온 사진 바로 아래 피드에 치마 입은 여성의 다리가 나왔고, 입고 있는 옷에 GAP이라는 브랜드 글자가 쓰여있었다. 타인의 성적 지향이 왜 모욕 섞인 농담이 되는 걸까? 심지어 게이가 뭔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다..
왜 이런 댓글을 읽게 하고 콘텐츠에 넣은 걸까, 제작진에게 메시지를 보내야 하나? 왜 이런 걸 웃기다고 생각하며 내보낼까? 댓글창을 봤다. 너무 클린해서 놀라버렸다. 아무도 나처럼 불쾌함을 느낀 사람은 없는 걸까..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또 다른 불쾌한 기억이 떠오른다. 운동에 관한 일상적인 대화를 하던 중 ‘남자가 어떻게 필라테스를 해요. 게이에요?ㅋㅋ’라며 모욕 당한 듯한 태도로 낄낄대는 남성 동료들과의 대화였다. 누군가 그렇게 한 마디 하자 다른 동료가 같이 낄낄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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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나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는 이런 일들을 마주할 일이 없어서 세상이 좀 나아지지 않았나 싶다가도, 갑자기 확 현실을 보게 될 때가 있다. 물론 때로는 가까운 사람도 마찬가지일 때가 있다. 그게 왜 웃기냐고 킬조이(kill joy) 하면서 내 불쾌감에 대해 설명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을 때는 쓴웃음을 지으며 넘어가기도 한다.
농담의 질은 개인의 인격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런 농담이 통용되는 일상은 한 사회의 지금을 보여주기도 한다. 개인이야 내가 멀어지면 그만이지만 사회는 그렇지 못해 마음이 무겁다.
<투명한 힘>은 캐슬린 스튜어트라는 문화인류학자가 쓴 책으로, 일상적인 내용들을 통해 미국 사회의 정동을 표현한다. 일상은 실체가 없고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본질이 쉽게 잡히지 않는다. 캐슬린은 사람과 사람, 제도와 관습의 충돌을 면밀히 관찰하고 묘사하며 사회의 한 순간을 포착한다. 앞서 인용한 내용은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한 사람, ‘즐거운 얼굴로 스웨터를 입고 있던 남자’가 어떻게 한 순간 ‘호모’로 낙인 찍히며 ‘서글픈 침묵’ 속에 있게 되는지 보여준다.
그의 별 것 아닌 일상에 몰입해서 읽다가 갑자기 흐름이 깨지는 글의 흐름은 우리가 한 번쯤 겪어 본 혐오의 순간, 이방인이 되어본 순간과 연결된다. 한 순간 설레고 즐거웠던 일상이 깨지는 경험들. 잘못된 언어로 프레이밍 당한 경험들. 웃어넘겨야 하는 순간들..
일상 속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이런 불협 화음을 감지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일상이 곧 나를 둘러싼 사회가 되고, 우리가 나눈 대화가 곧 한 시대가 된다.